늙음을 상상하는 것은 늘 두려움을 동반한다. 돈도, 힘도, 매력도 없어지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 그래서 이제 노후는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닥쳐오는 것이 되었고, 대책을 세우는 일이 되었다. 특히 지극히 개인의 문제,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이기 때문에 더욱 두렵게 느껴진다. 노후 대책, 노후 설계... 등 노후와 관련된 검색어를 인터넷에 넣어보면 온통 보험이나 연금 소개글만 뜬다. 그렇다. 핵심은 돈이다. 하지만 대체 얼마를 모아야 안심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 면에서 동성애자는 노후 준비에 있어 약자다. 일단 짝을 찾거나 연애를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은데다, 설사 커플이 된다고 해도 기혼자 중심으로만 세금감면이나 대출혜택이 주어지니 저축이나 주택구입에도 더 힘이 든다. 동네 이웃들에게 혹 레즈비언이라고 들킬까봐 눈치도 봐야하니 삶이 피곤하고 이래저래 술과 담배만 느니 건강도 해치고 돈도 버린다. 그래서인지 많은 레즈비언들이 ‘늙으면 모여살자’고 말하곤 한다. 3층 빌라를 구입해 층별로 살자거나 아예 도시 외곽에 땅을 싸서 마을을 이루자는 상상을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눈치 볼 것도 없이 친한 사람들끼리 그렇게 살면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레즈비언 실버타운은 가능할 것인가? 일단 노인들끼리만 모여 살 수는 없다. 살다보면 소소하게 생겨날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는 어찌할 것인가? 결국 운전이나 간호, 수리 등을 위한 여러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거나 드나들어야 한다. 그들을 모두 레즈비언으로 채울 것인가? 그 마을의 집값이나 땅값은 어떨까? 이웃의 눈치는 보지 않는다해도 이웃마을의 눈치를 보는 건 여전할 것이다. 더군다나 성질 더러운 호모포비아들의 표적이 되기도 쉽다는 점에서 안전은 또 어떡할 것인가?
열거를 하자면 끝도 없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로 나이든다는 것은 슬픈 일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나이듦을 좀 더 신나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규모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나만 좀 더 안전하게, 우리 애인하고 둘만, 내 친한 친구들하고만 더 잘 지내는 상상만으로는 결코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다. 당신이 지금 만원 한 장을 저축하면 당신이 늙어 살 집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 집안에서만 레즈비언이고 집밖을 나가면 레즈비언임을 숨겨야 하는 삶이 10년후에도 20년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이 공기 자체가 좀 더 자유롭지 않다면 어디서든 어느 때이든 우리의 가슴은 답답할 것이다.
가령, 미래를 바꿀 인권운동에 작은 관심이라고 가져야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착한 일이기 때문은 아니다. 당신의 노후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 노후를 ‘늙은 한 개인’이 아니라 ‘늙은 내가 살 세상’으로 한번 상상해보자. 규모가 다른 이 상상이야말로 사실 가장 현실적인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어쨌든 이 사회속에서 살아갈테니까!
글. 한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