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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L-NOLLAN?!/#5 Q

[이바닥소식]학생인권조례


호모포비아,
2011년 12월의 결정적 두 가지 문장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항문성교 배웠어

글. 호림

 How could your life be created?
당신의 생명은 어떻게 창조되었나?

 지난 12월 2일, 서울대 미대 졸업전시는 시작하자 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인 QIS의 홍 보 포스터에 “How could your life be created?(당신의 생명은 어떻게 창조되었나?)”라는 문구와 남성과 여성이 ‘선교사 체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기호를 도장 으로 찍은 “작품”이 ‘이성애 권장 반동성애 캠페인’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기 때문.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ㅁ씨는 “최근 영화, 만화, 소설 등 각종 미디어를 중심으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 작은 제동을 걸고자 시작된 캠페인”이라며 “모든 생명은 남녀의 합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이성애를 권장 한다”고 주장했다.
  빨간색=여자, 파란색=남자라는 단순 명쾌한 도식에 선교사 체위라니, 이건 너무 전형적이지 않은가.  “당신의 생명은 어떻게 창조되었나?”라는 물음을 던지는 그 문제의 “작품”이 담고 있는 답이라는 건, 이성애 삽입섹스.
음..... So, What?
   그러나, 조악한 “작품”을 비웃을 수는 있어도 그 작품이 서 있는 배경은 웃어넘길 수 없었다. QIS의 포스터에 대한 손괴였고, 대학이라는 학문 공동체에서 진행된 커리큘럼의 결과물이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동안 지도교수와 동료 학생들은 무엇을 한 것일까? 졸업전시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그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떻게 그런 일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가능했던 것일까.
  대학 내 호모포비아라면 나에게도 익숙한 일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해마다 발생한 레즈비언 인권운동 모임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변날)’를 향한 각종 테러사건은 대학 내 호모포비아 문제의 대명사로 다뤄진다. 변날이 만들어진 이후, 매년 교내 기독교 동아리들은 변날의 동아리 방 앞에 성유를 뿌리고 기도를 하는가 하면, 변날의 전시물 옆에서 전도를 하고, 전시물을 훼손하는 등 변날의 활동을 집요하게 방해해 왔다. 그러나 2008년 이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변날과 함께 나섰기 때문이다.
  2008년 문화제를 위해 학생문화관에 걸어놓은 변날의 무지개 걸개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마자 교내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다. 그리고 곧 몇몇 학생이 나서서 ‘변태소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모임(날개모임)’이라는 이름의 대응단위를 만든다. 변날과 날개모임은 CCTV를 통해 범인의 얼굴을 확인하고 이들이 교내 동아리로 등록된 모 기독교 동아리임을 알게 된다. 이를 토대로 무지개 걸개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자보를 붙였지만, 돌아온 건 “자기가 과거에 레즈비언에게 고백을 받은 상처 때문에 벌인 일이니 이해해 달라”는 얼토당토않은 사과문이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함께 분노했다. 학생문화관은 곧 변날을 지지하며, 해당 동아리의 행동을 규탄하는 대자보로 도배가 된다. 날개모임, 다른 중앙동아리부터 개인이 쓴 쪽자보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직도 변날을 지지하는 문구가 적힌 갖가지 종이들이 휘날리던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그 해 겨울, 범인들이 소속된 해당 동아리는 중앙 동아리 연합회의 의결을 거쳐서 제명되기에 이른다. 학교 내의 호모포비아 집단이 용인되지 않음을 학생사회의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이후 3년 동안 변날은 매해 가을 평화롭게 문화제를 치른다. 그 유명한 ‘망구스’ 탈을 쓰고 학교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이 일을 통해, 호모포비아의 존재보다도 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호모포비아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이 문제를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들은 그 공동체의 건강한 존립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존재였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항문성교 배웠어!

  이러한 공동체의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일이 얼마 전에 있었다. 바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대응 과정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우리’는 많은 이들의 지지와 연대 속에서 마침내 주민발의안 원안통과라는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지난 12월 14일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명시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성소수자 운동 역사상 최초로 시의회 점거농성에 돌입한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조항을 비롯해 학교 내에서 차별받는 성소수자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들이 포함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의 주민발의안이 입법예고 되었지만, 보수진영과 일부 기독교계의 반대로 인해 시의회 논의과정에서 관련조항이 삭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농성을 함께 하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호모포비아의 모욕에 취약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눈앞에 몰려와 말도 안 되는 문구가 쓰여진 피켓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그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등 뒤에서 흐느끼는 청소년 활동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한없이 무참한 마음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절박해졌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는 올바르지 못하니까 나는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사람들, 학생인권조례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탄원서 7박스를 들고 온 이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농성을 시작한 14일부터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알렸고, 시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해 하루에 수십 통씩 문자를 보냈다. 시의원의 과반 이상이 속한 민주당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멘션을 날렸고, FTA 집회에 나가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도 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촛불문화제를 했다. 다시 돌아 간다고 해도 그 이상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어려운 6일이었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가 단지 낯선 외래어가 아니라, 몸과 얼굴을 가지고 지금 여기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학교 내에서 차별받으며 고통받는 성소수자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모두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냈다.        
  그리고 12월 19일 아침이 밝았다. 16일에 미뤄진 교육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며, 이 회기의 본회의가 마지막으로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삭제된 수정안이 통과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눈물바람이었다.
  교육위원회가 열리기 전, 두 개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주민발의안 원안통과를 요구하는 우리의 기자회견과 학생인권조례를 폐기하라는 보수단체의 기자회견.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서 2011년 12월의 두 번째 결정적 호모포비아 문장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도중 어떤 아주머니께서 비장하게 꺼내든 피켓엔 이렇게 써져 있었던 것.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항문성교 배웠어!”     
  그 순간 엉엉 울고 있던 내 눈물이 쏙 들어갔다. 농성기간 중 마주한 호모포비아 피켓 중 가장 창의력 돋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잠깐만요. 학교에서 이성애 섹스는 가르쳐 주나요? 이 패기 넘치는 문장에 트위터는 실시간으로 술렁거렸다. 학교에서 항문성교를 가르쳐주면 정말 좋겠다는 게이들의 수다의 향연. 절박한 시간을 떠나보낸 지금에서야 나는 생각한다. 학교에서 레즈비언 섹스를 가르쳐줬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 사건의 결말은 알다시피 해피엔딩이다. 1)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차별금지 사유로 포함된 안이 교육위원회를 통과했고, 본회의 재석의원 87명 중 찬성 54명, 반대 29명, 기권 4명으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가결되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분노하고, 지지와 연대를 보내 준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성소수자들만의 고립된 농성이었다면 이런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 다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농성장을 찾았고, 지지 성명을 보내주었으며,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 주었다. 6일간의 농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호모포비아들을 비웃는 것은 쉽다. 저 두 문장처럼 그들이 하는 말들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황당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웃음이 먼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까지 누군가를 이성적으로 설득할 만한 호모포비아의 주장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비웃음만으로 이들을 넘겨서는 안 된다. 이들의 주장은 우리의 실존에 대한 부정이며, 종교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이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호모포비아에 대항할 새로운 힘을 얻었다. 호모포비아들을 마음껏 비웃으면서, 동시에 우리는 이제 한발 더 앞으로 나서야 한다. 농성장 문화제 때 전화연결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구호로 글을 마친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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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1월9일, 서울시교육청은 시의회에 서울시학생인권조례의 재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학생인권조례는 이 모든 공격과 부당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과되고 시행될 것이다. 이것이 농성과정에서 내가 얻은 힘이다. 비관 없이, 끝까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