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vol. 5
[세대탐방]
AhnZ
2009. 12. 22. 22:48
레즈비언 세대 간이 단절되었다고 느꼈던 시점은 신촌공원(줄여서 신공)에 처음 갔던 날이었다. 처음 십대들이 모여 있는 신공에 발을 딛는 순간 놀랐던 것은 적어도 100명쯤 되는 십대아이들이 범상치 않는 패션을 하고 신공 화장실 쪽에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보통의 십대들과는 다른 화려한 옷차림과 장신구들은 TV 속 가수를 연상시켰다. 아니 그보다 더 멋있었다. 어리버리 십대들에게 다가갔을 때 너무도 반갑게 웃으며 환하게 맞아주었고, 사소한 질문들을 시작으로 서로에게 다가갔다. “몇 살로 보여?” 라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21? 23?” 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좋아라 했다(실제 나이 삼십대이기에...).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공의 십대들이 나를 그렇게 어리게 보는 이유에는 참으로 아픈 현실이 숨어있었다. 바로 ‘한 번도 30대 40대 그 이상의 레즈비언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나이는 22살과 23살 이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던 거 같다.
내 삶의 롤모델이 없다는 것, 삶의 멘토가 없다는 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성애자사회에서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레즈비언들을 더욱더 힘들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멘토링과 레인보우링 잡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40대 50대 레즈비언 선배님들과 10대 신공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가졌다. 선배님들이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기도 하고 서로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나눌 수 있는 레인보우 브릿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십대와 비십대 그리고 2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들 간에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선배님들이 처음 신공에 오셔서 질문을 받고 답해주고 이야기를 나눌 때 십대들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아무 말 안하고 그 자리에 꼭 붙어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들도 선배들이 필요하고 멘토가 필요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몇몇의 친구들은 선배님들께 안부전화도 하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 단절되었던 레즈비언 세대 간의 소통을 회복하고 정서적, 역사적 유대감을 공유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활동이 이제 두 걸음 정도 걸음마를 걸은 것 같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고 고민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는 순간까지
세대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
글.홀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