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이반] 칼럼 / 이기심이냐 인내심이냐의 문제가 아니야
인내심이냐의
문제가 아니야
글 . 한채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종종 ‘기혼 레즈비언’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다. 이성과는 결혼을 안정을 꾀하고 동성과는 연애를 즐기려는 이기주의자라는 비난과 결혼을 했으면 책임을 지든가 그게 싫으면 이혼을 하든지 양단간의 결정을 내리라는 요구와 아무 것도 모른 채 속고 있는 남편과 모든 걸 참아주는 동성 애인이 불쌍할 뿐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이 모든 지적들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다시 한번 의심한다. 이 지적들이 우리의 삶에 대체 무슨 의미를 줄 것인지에 대해. 온정주의를 발휘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이야기로 가져와보자. 기혼 레즈비언들에 대해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좀 더 불굴의 용기나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단지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혼자앞에서 더 우월해지거나 당당해질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결혼의 압력이 전혀 없는 청소년기에 자기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다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레즈비언이면 자동적으로 결혼면제권을 얻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결혼하는 순간에 사랑을 느끼는 온 몸의 세포가 다 죽어버리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말이다. 이성애중심적인 사회 구조와 결혼지상주의에 도취된 사회 제도의 문제를 한 개인의 비장한 결단의 문제로 바꾸는 건 아닐까. (특히 결혼 후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점에서, 기혼 레즈비언과 기혼 게이는 또 다른 지점이 있을 것이다)
기혼 이성애자들과도 연대할 수 있는 우리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울 동지로 기혼 동성애자의 손은 선뜻 잡지 못하는 걸까. 결혼을 거부하는 것도 저항이며, 결혼한 뒤 이혼하는 것도 저항이지만 결혼생활을 견딘다고 해서 순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설명하고 누구로 정체화하고 있는가이진 않을까. 좀 더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할 그 이야기. 오늘... 나는 일단 많은 기혼 동성애자들이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나도 살고 당신도 살아서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싶다. 다른 선택이 가능한 그 세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