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이야기] 19금이라 죄송해요
19금이라 죄송해요
19금 : 청소년 보호법에 의거 19세 미만이 이용할 수 없는 매체를 지칭하는 인터넷상의 단어.
■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
청소년에게 폭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행사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ㆍ비윤리적인 것
기타 청소년의 정신적ㆍ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
초등학교를 졸업하곤 놀이터가 주차장이 된 것도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선 놀토에 왜 학생들이 학교를 가는지 궁금해 했다. 이제 더 이상 포르노사이트를 접속하며 아버지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할 일이 없어진 지금, 이 이야기도 잊기 전에 얼른 풀어놓아야겠다.
일전에 모 포털의 지Xin을 찾아보던 중 ‘19금 fireegg' 라는 제목이 눈에 띠였다. 밤이 지루하고 외로워 은근한 기대를 품고 클릭을 했는데 ..
“경고 먹진 않겠죠? 한쪽 고환이 차가워요.” 흠. 이 낭패감이란.
그러나 그곳을 비롯해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고민상담소에서도 19금이란 제목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용들은 “미성년자인데, 손가락을 통한 섹스가 비위생적일 까봐 걱정돼요. 주의할 점이 있나요?” “오늘 번개팅으로 첫경험을 했어요. 상대방이 아저씨였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걸까요?” 같은 위생에 관련한 성지식, 혹은 미성년자이기에 오히려 더욱 필요한 상담들이었고. 작성자도 대부분 미성년자였다. 미성년자가 자신의 글을 올리면서 19금이라니? 게다가 그런 글엔 늘 “19금이라 죄송해요. 문제되면 지울 게요” 라는 사죄(?)가 달려있었다.
처음엔 사람들에게 한소리 하고 싶었다. 이봐요 이건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읽어선 안 될 글이 아니라 미성년자이기에 꼭 읽어야 할 글이잖아요? 당신들도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없어서 고민 상담을 한 거 아녜요? 게다가 건강문제를 상담하면서도 ‘19금’이라는 태그를 붙이고 미안해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요?!
그러나 곧 그 잔소리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19금’이라는 단어를 꼭꼭 붙여가며 미리 경고를 주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성에 관련한 이야기는 미성년자들이 보면 안돼’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까?
청소년 보호법은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을 각종 유해환경과 매체로부터 차단하여 보호한다. 흠. 감사하다고 치기로 하자.
그런데 청소년들이 ‘어떻게 보호되는가’를 살펴보면 당황스러운 점이 많다.
현재 포털사이트에서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검색 불가능하거나 검색결과의 일부가 차단되는 단어 중 몇 개를 모아본다.
19금(19금이 뭔지도 모르면서 19금에 의해서 차단되어야 하나?)
콘돔(도대체 왜? 피임약은 검색 가능하다)
페니스, 클리토리스 (음경, 고환 ,음핵 은 검색 가능하다. 영어를 쓰면 더 야한 단어인가??)
강간 (대체 너는 왜?!??#^$^!@#~?)
섹시 혹은 sexy (노래제목인걸 나보고 어쩌라고 ㅜㅜ)
미소녀 (미소년은 검색가능. 한 때 여고생도 검색 불가능한 적이 있었다 하하.)
또한 채팅방을 개설할 때 ‘레즈비언’ ‘게이’ ‘이반’ ‘동성애자’ ‘바이섹슈얼’ 등의 단어가 포함되면 방을 만들 수 없다. '음란/불법등의 방제는 제재받을 수 있기 때문' 이란다. 재미있는 점은 트랜스젠더와 양성애자라는 단어는 포함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지점이 음란이고 불법인지 혼란스럽다. (심지어 이것은 최근의 개정사항이다)
물어보자, 청소년들은 섹스를 하면 안되는가? 아니면 18세의 청소년이 1월1일 0시가 지나면 섹스 할 자격이 생기는가? 설령 '섹스’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 하더라도 청소년의 섹스를 막을 수 있는가? 이러한 차단이 성폭력을 당하거나 성관계를 강요당한 청소년을 지켜주나? 청소년들은 피임이나 안전한 성관계에 관해 학교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나?
에라이 뭐 그래 다 제쳐두더라도 - 레즈비언 청소년들은 왜 채팅방에서 같이 모이지도 못하고, 페니스는 어째서 음경보다 더 선정적인걸까?
그렇게 멀지도 않은 과거에, 미성년자가 검색할 수 없는 단어에는 생리대와 동성애자가 포함된 적이 있었다. 때문에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청소년이 가입할 수도 없었고, 우리는 음지로 떠돌아야만 했던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 단어들이 검색 가능한 지금에도 하나의 일상적 표현으로 자리 잡은 섹시라는 단어나 성폭행에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강간이라는 단어를 검색할 수도 없다. 이런 단어를 쓸 때마다 19금이라는 빨간 딱지가 번쩍이고 심지어 자신의 게시물이 삭제되기까지 하니, 청소년들은 자신의 건강문제나 꼭 필요한 성지식, 피임 문제를 상담하면서도 다른 19세 미만들은 읽지 말라고 경고하고 자꾸만 죄송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단어들이 각 포탈에 의해 주관적으로 결정된 경우도 많고, 그래서 우리가 각 포탈이나 청소년 보호위원회에 대해서 이런 ‘정당한 정보들을 차단당하는 것에’ 부당함을 주장할 수도 있고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런 정보를 당연히 그리고 당당히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19금? 우리가 영상물등급위원회도 아니고 당당히 알아야 할 것을 질문하면서, 이제껏 그 19금 때문에 곤란하고 답답했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거면서 스스로빨간 딱지를 붙이며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다. 겁도먹지 말고 삭제될까 눈치 보지도 말고 다른 미성년자 친구들과도 함께 안전한 성지식, 피임, 즐거운 섹스에 대해 공유하자. 그런 정보들이야 말로 우리를 진정 보호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글. 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