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ason 1/vol. 5

[특집: L WORLD] 아웃팅, 그 애매모호한 것.

여기에 자신을 사랑하고 인생을 즐기려는 레즈비언 L씨가 있다.
그녀는 인복도 있어서 친구들에게 모두 커밍아웃을 하고도 멀어지는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L양에게는 레즈비언 친구인 B씨가 있다. L, B, 헤테로 친구들은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 서로 얼굴 정도는 모두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L과 B는 서로의 연애 상담을 하며 걸어가다 L의 헤테로 친구들을 마주친다. 헤테로 친구들인 H,T,R은 L과 반갑게 인사한다. 이제 서로의 갈 길을 가는 L과 H,T,R. 뒤돌아서는 L과 B의 귓가로 박히는 친구들의 작은 목소리. “B도 그쪽인가봐.”. 그래, 맞긴 맞다. 아니라고 할 수가 없는데 맞다고 할 수도 없다. B는 주변의 헤테로에게 커밍아웃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엑스피드가 아니라 타임머신. 5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궁금하면 본인에게 물어보란 말이다. 뒤에서 짐작하고 추측하지 말고-_-)

여기 또 다시 L씨가 있다. 역시 레즈비언이다. 사실 위에 그 L씨이다. L은 흡연자이고, 학교에서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흡연을 하는 매너를 가진 멋진 여성이다. 오늘도 열심히 수업을 듣고 나와서 흡연을 즐기려는데, 아차! 라이터가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왠 긴 생머리 아가씨가 멋지게 담배를 즐기고 계신다. 가까이 다가가서 정중하게 묻는다. “혹시 라이터 가지고 계시면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그녀는 생글 생글 웃으며 라이터를 건넨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고양이가 멋들어지게 그려진 어느 이반바의 라이터를....... 손이 떨린다. 아는 척 하자니 이상하다. 그런데 모르는 척 하자니 자기만 아는 것 같아 치사하다. 긴 생머리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L에게 커밍아웃과 아웃팅의 경계에 선 어떤 것을 하신 것이다. 이럴 때 L이 용기 내어 “띵동!” 한 마디 외치면 좋겠지만, 그게 참 어렵다. 떨리는 손으로 라이터를 돌려드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긴 생머리 그녀. 다음에 그 바에서 만나면 술 한잔 살게요.......

자, 이제 아시다시피 또 L이 있다. 모 단위에서 활동중인데, 그 단위가 뭔고 하니 LGBTQ들이 뭔가 해보자 하여 모인 단위이다. 어쩌다보니 외부의 다른 단위들과 연계하여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그 외부 단위들과 함께 하는 회의에 참석할 누군가가 필요하여 L이 나섰다. 그래서 다른 단위들은 L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L은 그 단위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어쩌다 L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자주 본다. ‘아, 쟤네가 그 단위 사람들이구나.’하는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멀어진다. 그래, 활동을 하려니 얼굴이 드러난다. 정체를 감추자니 활동이 어렵다. 단위 사람들은 고민한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글쎄. 여기까지 다 말해주면 재미없으니 한 번 추측해보시기를.

L은 바로 나이거나 내 친구들이다. 그리고 사실 당신이기도 하다.
이곳에 실린 에피소드들은 읽을 때는 피식 웃거나 맞아! 하며 공감하고 지나갈 일들이지만, 겪어보면 좀 달라질걸?
L은 오늘도 고민한다. 그러니까 아웃팅인거야, 아닌거야?
아웃팅의 경계는 어디까지니?

글. 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