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간의 사랑(?)을 다룬 야오이를 보신 분이라면 궁금할거에요. 여자들간의 사랑을 다룬 장르는 없냐고요. 물론 있어요. 여자들간의 ‘순수한’ 사랑을 다룬 백합물이 있습니다. 야오이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진 않지만 백합물도 꽤나 오랜 길을 걸어왔다고 볼 수 있죠. 백합의 어원은 지금은 폐간된 남성 동성애자를 위한 잡지 ‘장미족’의 편집장이 남성 동성애자를 ‘장미족’이라고 불렀던 것에 착안하여, 여성 동성애자를 ‘백합족’이라고 부르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무렵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라는 가벼운 소설로 백합의 길에 들어섰어요. 여자들만 잔뜩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선배와 후배 사이의 오묘한 긴장감이 보는사람을 애타게 만들기만 하고, 진도를 나가는건 아니라서 아쉬운 부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서 그런건지 성스럽기만 하더라고요. 그 후로 만화책과 애니매이션을 보았지만 여전히 소설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더라고요. 이렇듯 백합이란 용어 때문인지 여학생들의 사랑이 주를 이루고 키스신 하나 나오지 않는 백합물들이 대부분이라 생각되지만 현재는 포괄 범위가 넓어지면서 과감한 면도 볼 수 있게 되었죠.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백합물>
일본에서는 전문 잡지가 나올 만큼 활동이 활발한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백합물을 구해보기가 아직도 어렵습니다. 대부분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보고 있죠. 많진 않지만 한국에서 정식 발행되는 몇 편을 소개합니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 (한국tv방영 1997년) : 초등학교 시절, 다 같이 모여 세일러문을 봤었어요. 세일러문부터 해서 참 많은 여자들이 등장해요. 넵튠과 우라누스는 공공연한 커플이었기에 패러디물도 엄청나고요. 이번 백합제에서 동인지도 한 권 구입했답니다.
3회 백합제-한 여름밤의 꿈- : 올 8월에 열린 백합제에 가봤어요. 몇 십 개의 부스에서는 주로 동인지를 중심으로 팔더라고요. 창작물도 있고 패러디물도 있었지만 아, 이 사람들 될거 같다 싶으면 끝나버리는 짧은 단편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물론 짧은 이야기에서 오는 강렬함도 있지만 끝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어서오세요. 305호에(와난작) : 요즘 이 녀석 때문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윤아는 과연 누구랑 맺어질까 사람들의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다가 몇 회 전 백설과의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덧글들을 보면 아, 이거 레즈물이야? 식의 덧글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응원글이 많이 보이는거 같아요. 잘 그려진 만화의 힘이 이런거지 싶습니다. 윤아의 촉촉한 눈망울을 자주 접할 수 있었던 백설과 윤아의 에피소드에서는 잊혀지지 않을 명대사가 여러번 등장했죠. ‘나한테 있어서 연인이란건 함께하면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런 건 무시하게 해주는 존재란 말이야!’(125화 ‘폭풍’중 설리의 대사),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지 않아도 되는거야(126화 ‘새출발’중 윤아의 대사) 그러면서 길었던 윤아의 에피소드도 끝이 났습니다. 윤아도 참, 여자를 좋아한다는 자신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윤성호 감독의 인디시트콤 할수있는자가구하라 자매풀 3 두근두근 레드카펫 (출연 : 이채은 권은수 이우정 김예리) : 이채은과 권은수의 대화장면은 흑백과 자막만으로 로맨틱하게 다뤄줘요. 바로 이어지는 김예리와 이우정은 기대하지 못했던 장면을 연출하더라고요. 둘이 앞의 영상을 패러디한 대사를 이어나가면서 고백을 하게 되는데요, 김예리와 이우정의 키스신을 보고 꺄~악~을 외칠수밖에 없었어요. 눈에 먼지가 들어갔을 때 혀로 빼준다는 설정이 가능한가 의문을 품었지만 일순 그런 의문은 잊고 보게 된달까요. 인터넷에서 ‘할수있는자가구하라’를 검색하면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만화책 단행본>
키리코 나나난의 Blue :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여고생들의 이야기라고 해요.
푸른꽃 :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는 게 어디냐고 생각하며 봤던 만화책입니다.
카시마시 :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 때문에 남자였던 소년이 여자가 되면서 삼각관계에 얽히는 내용인데요 가볍게 읽기 괜찮아요.
<정식 수입이 되진 않았지만 빼놓고 가면 섭섭한 작품>
소녀혁명 우테나(1997) : 어린시절 왕자님을 만나 왕자님을 동경하다 공주가 아닌 왕자가 되려한 우테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명작이죠. 물론 호불호가 갈리긴 합니다.
소녀섹트 : “야한 애니매이션이 보고 싶다면 당신은 소녀섹트를 선택한다-!” 여학생들의 섹스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만화예요. 성기묘사도 있고요. 만화책과 애니매이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