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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2/Episode 1

[청춘] column 지속 가능한 청춘

검은 봉다리에 구겨 넣은 인연에 고함
지속 가능한 청춘

왠갖 시들이 줄줄이 딸려와 묻는다. ‘달면 뱉고 쓰면 삼’키는 ‘가죽처럼 늘어나버린 
무모한 혓바닥’이 ‘껌처럼 씹고 버’린 청춘이기에?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세워’ 두었다 지나쳐버린 청춘이라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던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을 꼭짓점 삼아 지탱해 준 청춘은 그저 ‘한갓 캄캄한 뇌우였을 뿐’이라서? 그래서 ‘꽃대 위 팔랑 앉았다 간 청춘’을 
시크하게 잊었니? 

연서를 기대했으나 불발이다. 방점 찍어 발음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 싫다거나 무관심하다는 서술로는 해결되지 않는 모호함. 그래, 청춘을 이야기 하려는데 떠오르는 게 없다. 뭔가 싶어 다슬기 파먹듯 쪽쪽 빨아내니 왠갖 시들이 줄줄이 딸려와 묻는다. ‘달면 뱉고 쓰면 삼’키는 ‘가죽처럼 늘어나버린 무모한 혓바닥’이 ‘껌처럼 씹고 버’린 청춘이기에?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세워’ 두었다 지나쳐버린 청춘이라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던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을 꼭짓점 삼아 지탱해 준 청춘은 그저 ‘한갓 캄캄한 뇌우였을 뿐’이라서? 그래서 ‘꽃대 위 팔랑 앉았다 간 청춘’을 시크하게 잊었니? 꼬리 무는 질문을 잡고 늘어지니 그제야 검은 봉다리에 쑤셔 넣은 청춘이 보인다. 누구에게 들킬세라 포장조차 제쳐버린 그림자. 곰곰 더듬으니 사람도 들어온다. 득달같이 죄책감이 따라붙고 수치와 분노가 고개를 쳐든다. 불안 스민 슬픔이 돋는다. 
90년대 중반, 봄이 시작되던 월요일 아침이었다. 빛이 들기엔 많이 좁고 한기가 빠지기엔 어쩐지 깊은 복도를 우르르 몰려다니는 예닐곱 살의 아이들. 그네들을 보고 여기서 이대로 주저앉을까 두려워 원고지를 복사하던 시절이었다. 넌 왜 거기 있니? 너 저리 가지 못해? 지금 왜 이러고 있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뱉는 말이었다. 명분 없는 아이들의 위치는 내게 절망이었다. 하긴 나도 명분이 없었다. 뭐, 거창하게 삶에 대한 명분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에 대해서나 공간에 대해서 당위성이 없었다. 필연은 고사하고 우연도 없었다. 뒷심은 글뿐이었다. 돌아보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늙어죽을까 두려워 붙잡은 일종의 환상이었다. 잠잘 때조차 꿈꿀 수 없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백일몽. 종종 꼬맹이들의 간식 창고에서 과자를 훔쳐 먹고는 해질녘이면 소주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귀가길 지나치던 가게 앞, 파라솔 밑에서 맥주를 나눠 먹는 이들과 한패거리였으면 소망했다. 
그 여름의 끝, 나는 레즈비언’들’을 만났다. 소망하던 패거리의 일원이 되었다. 어딘가에 레즈비언이 살고 있다지만 그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시절이었다. 물어물어 PC통신 커뮤니티를 찾았고 나는 번개에 나갔다. 이름 대신 닉을 주고받으며 아마도 나는 안도했을 테다. 나와 닮은 이들과 마주한다는 게 좋았다. 스스로를 증명하는 데 많이 지쳐버렸던지라 그렇게 서로를 비추며 존재를 확인받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커뮤니티의 첫 만남 후기에는 언제나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 기뻤다’는 문구가 쓰여 져 있었다. 어디에도 없을 것 같던 레즈비언을 그렇게 만났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길,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금지한 길 위에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 ‘당신’들을 만났다.
하지만 우리는 헤어졌다. 일상은 성정체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n개의 정체성을 가진 개개인이 스스로를 대표할만한 카테고리로 퀴어를 선택했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는 어려웠다. 숱한 건 연인과의 이별이었으며 괴로운 건 간이라도 빼줄 듯 가까웠던 지인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싸우다 흩어지는 일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뒷심이었던 10년 지기 친구를 잃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묶여있던 후배와는 연락이 끊겼다. 함께 어울렸던 10년 지기의 일반 친구는 그저 ‘일반’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채널의 오랜 선배는 연인과 싸운 뒤 소원해졌다.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말 많은 청춘, 지키고 싶었으나 속절없이 작살났다. 그 사이 나는 ‘더불어 사는 것’과 더불어 ‘사는 것’의 차이를 알아버렸다. 
닮은 듯 달라서 전복되었던 시간, 그 균열을 살아내며 나는 관계를 고민했다. 따로 또 같이 지속 가능한 느슨한 연대가 화두였다. 이러저러한 대안을 훑고 궁리했다. 사이사이 비슷한 문제로 허덕이는 퀴어들도 만났다. 물론 퀴어만의 문제는 아닐 터였다. 어디서건 살다보면 겪는 그저 그런 세상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퀴어에게는 일상과 이상이 혼재된 관계라든가, ‘님’과 ‘남’ 한 끗발 차이로 붕괴되는 커뮤니티가 유일한 숨통이었다. 자유를 찾아 들어선 곳에서의 억압은 그래서 끝났다, 라벨 붙여도 어제가 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트라우마가 되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흐르는 게 아니었다. 찰나적으로 마주하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끊임없이 분화하는 생성과 창조의 지점이었다. 나의 경우, 과거의 관계들 모두가 미해결 사건은 아니었다. 대개는 과거완료시점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를 살려면 상태가 아닌 해석이 필요했다. 종결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였다. 나의 청춘이 검은 봉다리 안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오랜 궁리 끝에 나는 한 문장을 쥐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나의 청춘, 그 시절의 당신들에게 하고픈 이야기. 이것은 수작도 화해도 사과도 개선도 아닌 현재를 재구성하는 내 청춘의 목소리다. 끊어내려야 끊어낼 수 없는 그들인데도 뜨거운 감자라서 안절부절 했던 마음이 수굿하다. 슬픔과 불안을 위장하느라 분노를 뒤집어쓴 수치이거나 죄책감은 이제 없다. 그들과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없어도 그들은 나를 이룬다. 내가 그들 편이듯 그들 또한 내 편임을 믿는다. 한때 화가 불거져 믿지 않는다고 되뇄으나 부정할 수 없던 속절없는 신뢰. 그 때문에 지속 가능한 미래, 나에게는 이것이 청춘이다. 




초반 부분 인용된 시 (순서대로)
‘잘 가래 내 청춘’ 이상희 / ‘삼십대’ 심보선 /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 
‘내 청춘의 영원한’ 최승자 / ‘원수’ 보들레르 / ‘봄날은 간다’ 허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