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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2/Episode 1

JOB interview 수의사

수의사 전해성을 만나다.
글. 그냥

수락산역에 위치한 동물병원장을 만나러 회사 회식도 마다하고서 달려갔다.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다른 수의사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사양을 했었다. 소개시켜준다는 수의사를 잘 알지만 그래도 꼭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병원 문을 열자 페르시안 고양이 대박이가 도도하게 다가와 나의 다리를 꼬리로 살짝 치고 간다. 싱거운 시추 홍이는 뭐가 좋은지 연신 꼬리를 흔들 반가워했다. 병원 문을 닫고 우리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저녁밥부터 먹었다. 철판주꾸미에 밥까지 볶아 먹은 후 우리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맥주집을 찾아 나섰다. 시원한 맥주 잔을 앞에다 두고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전해성으로, ‘레즈비언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를 만든 사람이다. 


그래! 결정했어

5.000원짜리 수박 한 덩어리와 막 태어난 강아지(혜진) 한 마리를 맞바꾸어 키우게 된 것이 동물과의 첫 인연이었다. 혜진이와 함께 살아 온지 어느덧 12년이 되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난 그 해 혜진이와의 인연도 시작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혜진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오고 가면서 ‘나도 수의사가 되면 좋겠다.’라는 강한 생각이 들어 수의학과 대학편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선천적으로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그녀였지만 대학편입을 준비하는 1년 동안만큼은 공부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고 했다. 영어문법에서 3인칭 동사에 s가 붙는지조차 몰랐던 그녀였지만 1년 만에 영어문법을 독파했다. 끼리끼리 활동을 그만두고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 여러 해 고민하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의 일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하나하나 알아 간다는 게 너무 신이 났다. 편입 이후 3년 동안의 공부는 인생에서 참으로 신나는 시간이었다. 


수의사, 그들은... 

그녀는 혜진이를 키우면서 삼겹살에 소주를 좋아하던 식습관을 고쳤다. 육고기와 담배를 끊은 것이다. 현재 그녀는 개 5마리와 새 2마리의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수의사라고 해서 온전히 동물을 사랑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의대를 가고 싶었으나 성적이 되지 않아 수의학과에 오거나 동물병원을 운영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수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다른 동물 사랑으로 그녀는 함께 공부하는 수의학과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기도 했다. 수의사가 천직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6년째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졸업할 당시 수의학과생들에게 은행에서는 일천만원을 대출해 주어 그 돈으로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수의사 면허증은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농림부에서 발급한다. 반려자를 치료하는 의사이지만 개와 고양이가 가축으로 인정되어 농림부가 관할하는 것이다. 

수의사와 반려동물

동물병원이라고 해서 집을 잃어버린 강아지나 고양이를 발견하면 병원으로 데리고 와서 갖다 놓기도 한단다. 그러나 병원 형편이 어려운 경우 받아주지 못하는 때가 있다. 경제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받아주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수의사가 그럴 수 있나...’ 생각하는데,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참 난감하다고 한다. 그녀는 집을 잃어버린 동물과 버려진 동물에 대한 보호 및 예방 시스템이 없는 이 나라에 대해서 불만을 호소하기도 했다. 어린 강아지나 고양이가 이뻐서 키우다가 자신에게 잘 길들여지지 않으면 쉽게 버리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애완동물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반려자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그녀의 주변에 레즈비언 수의사가 2명이 있다. 그리고 수의학을 공부하는 사람 1명이 더 있다고 한다. 수의학을 공부하는 그녀마저도 수의사가 되면 모임을 해 볼까? 살며시 말을 꺼내는 그녀를 보며 여성주의의료생협이 생긴 것처럼 레즈비언수의사협회도 하나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