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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2/Episode 1

[축제] 싼초와 싼티의 드랙킹 드랙퀸 무한도전記

싼초와 싼티의 드랙킹 드랙퀸 무한도전記

마초 안의 마돈나 ,

오르가슴에 젖다!


모 블로거가 ‘노트르담 드 파리’ 이후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극찬한 정말 퀴어한 쇼의 주인공 싼초와 싼티.
제11회 퀴어문화축제 축하무대를 뜨겁게 달군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었다. 때론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었고 그래서 종종 발 묶인 적수였으나 종국에는 현실을 버텨낼 뒷심이 되었다. 하여 그들은 따로 읽히지 않았다. 개개인에게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황망해 하며 화장실로 내빼 오줌을 갈기거나 말똥거리던 눈망울을 풀고 멍 때렸다. 외따로 선 자기를 규정할 수 없는 X이고 또 X라고나 할까. 미성숙이라기보다는 미확인에 가까운 유기체 싼초와 싼티는 때문에 둘이 만나 ‘XX’로 거듭났을 테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XX’ 그들의 잡담과 같은 셀프 인터뷰는 그런 맥락에서 퀴어했다. 
인터뷰/정리. rider



확실히 싸다! 화끈한 퀴어에 젖은 ‘싼초와 싼티’의 첫 공연

싼초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싼티  글쎄. 싼초와 싼티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뭐 그런 것부터?
싼초  음, 처음 기억나? 
싼티  2010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후원의 밤 준비할 때였지, 아마. 
싼초  그때 사람들이 “너희 둘 노라조 해라” 부추겼잖아. 맙소사, 노라조라니. 메시지도 없고 웃기지도 않은 그런 거 말고 다른 게 필요했고 자연스레 드랙킹으로 흘렀던 것 같아.
싼티  때마침 센터 H 활동가가 ‘Dick in a box’ 영상을 보여줬는데 보자마자 ‘이거다!’ 싶더라고. 영상이 품고 있는 텍스트도 풍부했고 뭣보다 하면 재밌을 것 같았어, 안 그래? 
싼초  나도. 드랙킹을 하더라도 다른 느낌이길 바랐으니까. 최대한 남자에 가깝고 멋있고 섹시한 그런 게 아니라 퀴어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했어. 
싼티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 퀴어라서 퀴어적인 게 아니라 퍼포먼스 자체로 퀴어적인 드랙킹! 웰 메이드보다는 의외성이 간절했는데 ‘Dick in a box’는 정말 딱 맞는 곡이었지. 
싼초  사타구니에 선물 상자를 달고 ‘자지’라는 단어를 훅 내뱉는 거 신났어. 아름다운 가게에서 2시간 동안 고른 남자 정장은 그 자체로 일탈이었는데 이 모든 게 내가 좋아하는 놀이였고. 아는 사람 앞에서만 내지르던 더러운(^^) 은유나 비유를 무대에 올리다니. 사람들이 재밌어 할 거라는 믿음? 어느 정도 따라오겠거니 생각했지만 결과는 예상 외였어, 그치?
싼티   그랬지. 3월 11일, 그날의 무대는 예상대로 폭발적이었어. 물론 친구들이 태반이었고 그들의 피드백이 전  부였지만. 뭐 우리가 하면 다 대박인 거지. 우린 프라이드가 강하니까, 
하하. 고백하건대, 나는 싼초랑 뭔가를 하는 게 마냥 즐거웠어.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이 긴장되지도 않고 외려 에너지가 솟더라. 싼초와 또 관중과 호흡하면서 즐기게 되더라고. 무의식적으로 주목받는 걸 좋아하나봐. 
싼초  나는 걱정이 많았어. 물론 즐거웠지. 그런데도 긴장은 가시지 않더라. 연기를 전공하면서 간혹 무대에 서곤 했지만 한 번도 내가 하고픈 공연을 한 적은 없었거든. 이런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기쁨이었고 그래서 잘 하고 싶었나봐.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했고 그 욕심이 과했는지 공연 끝나고선 앓아누웠지 뭐. 
싼티  아무도 네가 그렇게 긴장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 했어. 무대에 오른 너를 봤다면 어떤 누구도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었을 걸.  
싼초  사실 나 무대 오르는데 다리가 풀려 죽는 줄 알았어. 결국 공연 끝낸 다음날 출근했다가 오전 내내 앓다가 오후에 조퇴했잖아. 장염이었어. 


체면 없는 일상에서 줏대 없이 뒤엎고 주저 없이 욕망하기

싼티  그래서 이번 퀴어문화축제 준비할 때 아예 앰뷸런스 대기시키라고 이야기하곤 했지 아마. 하하. 
싼초  다시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고생해서 완성지은 공연을 묻어두기가 아깝더라. 퀴어문화축제 사전파티와 마레연(마포레즈비언유권자) 모임은 그 레퍼토리로 가니 편했지. 문제는 퀴어문화축제 축하파티였어. Dick in a box만으로는 분량이 모자랐으니까. 더 늘려야 하는데 미치겠더라. 돈 되는 것도 아니고 경력이 쌓이는 것도 아닌데 매일 밤 죽어라 연습하자니 울고 싶더라고. 
싼티  하긴 나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새로운 공연을 기획한다는 게 부담스럽더라. 퀴어문화축제 축하무대 제안을 받고 나는 좀 더 뒤집을 수 있는 걸 원했는데 아이디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더라고. 마돈나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정말. 
싼초  그건 정말 전복의 전복이었지.
싼티  그러게. 싼초와 내가 남자 옷을 입고 남자처럼 행동하고 나서 키스를 하잖아. 그때 쟤들 뭐야? 둘 다 레즈비언인데 남자 옷을 입고 게이 커플이 되어 키스를 해? 그러다가 옷을 벗고 두 명의 마돈나가 되는 거야? 이건 해석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혼란스러운 발상들이 나는 재밌었어.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사람은 우리가 옷을 벗기 전엔 게이인 줄 알았다는데 그건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어. 드랙을 드랙으로 읽지 못하는 순간도 재밌고. 
싼초  이전에 공연을 봤던 사람이 우리의 선물 박스에 만 원을 넣어주기도 했잖아. 그거 정말 고마웠어. 돈도 돈이지만 뭐랄까 감동이더라.
싼티  여성영화제에서 봤던 ‘탑 트윈스’의 그녀들처럼 싼초와 싼티도 황폐한 이 바닥을 일궈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어. 싼초는 매번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무서워서 안 되겠다고 하지만 공연 끝나고 후기 퍼다 올리고 이런 저런 자료들 가져와서 의견 제시하고 공연 홍보하는 거 보면 이제 시작이구나 싶거든.
싼초  나는 싼티가 큰 비전을 이야기할 때 살짝 발 빼고 싶게 돼.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사는지 아는데 나는 그렇게 살기 싫어. 
싼티  그렇다고 네가 여유롭진 않잖아.
싼초  그건 그래. 하지만 나는 또박또박 월급 나오는 일을 하고 싶다고.
싼티  그래. 그 맘 이해해. 88만 원 세대의 88만 원이라도 꼬박꼬박 받으며 일하고픈 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지금 싼초와 싼티를 홍보하고 그것으로 ‘지금’ ‘여기’에서 웃는 걸. 불안을 잊는 그 순간은 싼초와 싼티를 ‘입고’ 마초와 마돈나를 오가는 순간이잖아.  
싼초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처음 축제 퍼레이드에 참가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희열이 엄청났어. 그 해방감에 몸이 막 달뜨더라고. L클럽 처음 가서 수많은 레즈비언들 봤을 때의 희열의 몇 배? 지하 클럽 아닌 대낮에 해가 쨍쨍한데 사람들이 가득 찬 광장에서 외치고 걷는 거. 사실 난 발가벗고 다니고 싶었어. 
싼티  그래? 나는 소규모로 놀다가 대규모로 놀게 된 정도였는데 아마도 상황이 다르니까 받아들이는 느낌도 달랐나봐. 나는 커뮤니티에서 비교적 지지받으며 지내곤 했으니까. 싼초에 비해서 덜 억압받는 환경이었다고나 할까. 
싼초  갑자기 궁금해졌다. 만약에 싼티가 커밍아웃하지 않은 지인이 와서 봤다거나 부모님이 오셔서 보게 된다면? 아무리 분장을 해도 내 딸을 알아볼 수 있다면? 그건 어떤 느낌이야?
싼티  못 알아봐, 절대. 내 딸은 저런 걸 할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할 테니까. 부모님이 아는 나와 레즈비언으로서의 싼티는 다르니까. 물론 그러기를 바라는 강력한 부인일 수도 있겠지만. 싼초는?
싼초  아마 알아본다 해도 드랙이 의미하는 게 뭔지 모르실 거야. 대학축제나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CD 같은 걸로 생각하시겠지. 돈 들여 공부해서 저런 걸 한다고 생각하실 걸. 음, 헛헛하고 씁쓸해지는 결말이다. 
싼티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실리게 될지 궁금하다. 뒤죽박죽 이상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는데 괜찮을까. 어쩌면 조선일보 식으로 짜깁기 되지 않을까?
싼초  조선일보 식 짜깁기? 그거 좋다! 재밌다! 어떻게 왜곡될지 궁금하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