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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L-NOLLAN?!/#2 Butch

[Butch] 어느 부치의 고백

긴머리부치의 구인광고

나는 여자고 여자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레즈비언이다.


예쁜 옷, 화장품, 명품 가방, 하이힐. 모든 여자가 그렇듯 나도 그것들을 아끼며 사랑한다. 다른 여자들과 내가 다른 점은 좋아하는 상대의 성별이 다르다는 것, 그것뿐이다.

반짝이는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나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세공된 반지가 아름답다고 느꼈으며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애인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모든 여자가 예쁜 것을 좋아하듯 나도 자연스럽게 예쁜 여자가 좋다. 오히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여자라는 생물이 예쁜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미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부치의 기준이 머리카락이라는 것에도 이질감을 느낀다.

머리카락이 짧은 사람이 모두 부치는 아닌 것처럼 모든 부치가 머리카락이 짧아야하는 것도 아닌 것을. 이 이상한 공식이 언젠가부터 굉장히 당연시 여겨져 머리카락이 길면 ‘어떻게 긴 머리카락으로 부치를 하느냐’는 당황스러운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가끔 힘든 현실을 온몸으로 느낄 때면 남자로 태어나는 편이 더 좋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한 번쯤 꿈꿔보지만 그런 예외를 제외하고는 내가 여자라는 것을 후회하거나 슬퍼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꼭 성향을 나누어야 하는 이러한 질문들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butch’ 혹은 ‘femme’이라는 단어가 결코 좋은 뜻만은 아니라는 것도 이유가 되지만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싫기도 하니까. 뭐, 이런저런 토를 달지만 결국 두 가지 선택 속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말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부치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그냥 나는 키스를 받기보다는 하고 싶어 하는 쪽이고 잠자리를 망설이기보다는 망설이는 여자를 설득하고 싶어 하는 쪽이다. 이 이상 더 큰 이유가 필요한가?

긴 머리카락에 하이힐을 신고도 얼마든지 섹시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유혹하지 못할 만큼 매력이 없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의 머리카락에 키스할 수 있으며 당신의 다리를 끌어당겨 안을 수 있는 나는 긴 머리카락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충분히 아까운 상대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아직도 머리카락이 짧은 부치가 매력적인가? 그렇다면 당장 내게 만나자는 청을 보내라. 아마 당신은 날 만난 뒤부터 긴 머리카락의 부치도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의 근원은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대할 수 있느냐는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니 믿어도 좋다. 이래도 의심이 간다면 그런 당신도 연락하라. 우리 지금 만나자, 당장.

나는 늘, 정장을 입고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으며 바쁘게 나가는 출근길에 나를 돌려세워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줄 귀여운 여자와의 일상을 꿈꾼다. 나란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로의 부케를 바꿔 가질 수 있는 그런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

나와 함께 할 당신의 구두 사이즈는 어떻게 되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두를 내 손으로 신겨주며 당신이 내게 오는 길을 축복하고 싶다.

이 정도의 글로 반하면 곤란하다. 당신이 내게 반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머리카락이라는 장애물은 걷어차고 어서 내게로 달려오라, 나는 여기서 당신을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있으니. 


글. 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