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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L-NOLLAN?!/#3 기혼이반

이바닥소식 / 부산으로 간 퀴어버스

부산으로 간 퀴어버스


난 무척이나 소심하다. 타임라인에는 온통 한진 이야기로 채워졌고 내내 트위터를 보기만 하다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퀴어버스를 따라 나섰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마레연 주민의 노래, 지보이스의 노래와 율동을 따라하며 45명을 꽉 채운 퀴어버스는 부산을 향했다.

 

무지개 깃발 들고 평화행진

1차 희망버스 때는 담을 넘어 85크레인 옆까지 갈 수 있다고 들었었고 이번에도 평화롭게 행진하고 올 거라 기대했었다. 비가 억수로 오는 부산역 앞에서 모인 우리들은 무지개 깃발을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영도다리를 건너 경찰의 차벽에 막힌 채 85크레인을 1km 앞에 남겨둔 채 행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간절했으나 가만히 서서 구호를 따라 하거나 연설을 들으면서 대기를 탈 수 밖에 없었고 경찰 쪽에서는 집회를 그만두라는 방송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어느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고 무차별적으로 뿌려진 물대포에 난생처음 최루액을 맞기까지 했었다.

 

"여러분, 제가 왜 안 두려웠겠습니까, 제가 왜 안 불안했겠습니까"

예상치 못하게 맞은 최루액은 너무 매워서 여태까지 양념통닭, 매운 닭발, 매운 음식 안 먹은 것들을 한번에 먹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물, 콧물이 흘러 내렸고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경찰들은 그 틈을 타 앞으로 밀고 나왔다. 앞도 보이지 않아서인지 이 순간만큼은 정말 무서웠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들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건데 시위라면 무조건 강압적으로 막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클럽에 가도 1시부터 졸기 시작하는 내가 익숙하지 않은 팔뚝질을 해가면서 밤을 홀딱 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단 하루의 기다림도 참으로 힘들었다. 185일째 85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장의 기다림은 얼마나 고단할까. 날이 밝아오면서 길 위에 널부러져 자는 사람들이 보였고 본적도 없는 피난 현장을 떠올리게 했다. 최루액을 맞고는 비도 줄어들고 몸과 손은 점점 화끈거리고 아침이 되면서 해가 쨍쨍하니 우산으로 햇빛을 아무리 가려도 아스팔트의 열기까지 피할 수가 없었다. 손의 뜨거움과 몸의 가려움은 고통이었다. 햇빛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3차 희망버스를 다짐하며

지보이스 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환호하고 기다림의 끝엔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협상은 결렬됐고 다음 3차 희망버스로 다시 오자 결의를 다졌다. 마지막 정리집회 때 김진숙 지도위원장은 통화로 연설을 하면서 장애인 다음으로 성적소수자를 두 번째로 호명했다. 그래, 그 분도 역시 성적소수자야 라며 우리끼리 기뻐하고, 옆에서는 눈물을 훔쳐내고, 그렇게 마무리를 했다. 짐을 챙겨 떠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파란작업복을 입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배웅해주었다. 울먹이며 인사하는 누군가의 표정에, 한 것도 없는데 고마움을 표현하는 그들에게 내가 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내 마음의 무언가가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다짐하였다. 조만간 3차 희망버스 타고 다시 올게요.


글. 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