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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L-NOLLAN?!/#3 기혼이반

[기혼이반] 칼럼 / 이기심이냐 인내심이냐의 문제가 아니야

이기심이냐
인내심이냐의
문제가 아니야


글 . 한채윤

 얼마 전 우연히 어느 기혼 동성애자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아니다.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니 그녀를 ‘레즈비언’이라고 내가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확실하게 아는 건 그녀가 결혼에 대한 책임감과 뒤늦게 찾아온 운명적 사랑 사이에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단편적으로밖에 전해질 수 없는 그녀라서 마음이 아프다. 아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안에 너무 많은 말이 넘쳐 스스로 생의 입을 닫은 사람,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에 남편만이 고스란히 떠안을 황망함과 그 사이에서 사라질 많은 기억과 애도들. 애당초 그녀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꿈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었을까. 뉴스에 실렸다면 필시 ‘정체성 혼란’이라는 한 단어로 간단히 압축되어버렸을 그녀의 삶을 상상하다 그만 눈가가 시려왔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살아있었다고 해도...그녀가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알았다고 해도...그저 ‘기혼 레즈비언’이라고 불렀겠지...비혼이 아니라는 이유로.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종종 ‘기혼 레즈비언’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다. 이성과는 결혼을 안정을 꾀하고 동성과는 연애를 즐기려는 이기주의자라는 비난과 결혼을 했으면 책임을 지든가 그게 싫으면 이혼을 하든지 양단간의 결정을 내리라는 요구와 아무 것도 모른 채 속고 있는 남편과 모든 걸 참아주는 동성 애인이 불쌍할 뿐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이 모든 지적들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다시 한번 의심한다. 이 지적들이 우리의 삶에 대체 무슨 의미를 줄 것인지에 대해. 온정주의를 발휘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이야기로 가져와보자. 기혼 레즈비언들에 대해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좀 더 불굴의 용기나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단지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혼자앞에서 더 우월해지거나 당당해질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결혼의 압력이 전혀 없는 청소년기에 자기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다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레즈비언이면 자동적으로 결혼면제권을 얻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결혼하는 순간에 사랑을 느끼는 온 몸의 세포가 다 죽어버리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말이다. 이성애중심적인 사회 구조와 결혼지상주의에 도취된 사회 제도의 문제를 한 개인의 비장한 결단의 문제로 바꾸는 건 아닐까. (특히 결혼 후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점에서, 기혼 레즈비언과 기혼 게이는 또 다른 지점이 있을 것이다)

기혼 이성애자들과도 연대할 수 있는 우리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울 동지로 기혼 동성애자의 손은 선뜻 잡지 못하는 걸까. 결혼을 거부하는 것도 저항이며, 결혼한 뒤 이혼하는 것도 저항이지만 결혼생활을 견딘다고 해서 순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설명하고 누구로 정체화하고 있는가이진 않을까. 좀 더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할 그 이야기. 오늘... 나는 일단 많은 기혼 동성애자들이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나도 살고 당신도 살아서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싶다. 다른 선택이 가능한 그 세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