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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L-NOLLAN?!/#3 기혼이반

구인광고 / 그랬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글. 소녀랑(少女郞)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양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고 아저씨 같아 보이더라도 흉보지 않을 애인이 내 자취방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스레빠를 끌고 찾아가도 좋을 애인,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두 눈 마주하며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애인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사랑이 필요하리라.
그가 펨이어도 좋고 부치여도 좋다. 나와 나이가 같거나 한 살 적거나 한두살 많으면 좋다. 다만 그의 성격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예쁘거나 쭉쭉빵빵일 필요가 없고, 수수한 맛을 알고 귀여운 몸가짐이 베여 있으면 된다.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태클을 넣어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제정신이 되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랑을 알지 못한다. 나는 많은 사람과 사귀지도 않았다. 나의 일생에 한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달달한 로맨스, 감동적인 로맨스, 비극적인 로맨스, 담백한 로맨스 등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에 울고 웃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로맨스 중에 나의 로맨스로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만약 내가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용기를 냈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기억은 되지 않았을 걸.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애인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에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똑똑해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는 중독성이 심한 온라인 게임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애인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사랑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 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지하철을 타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세탁기에 피죤을 넣다가, 밤샌 날 아침 창문을 열다가, 장마철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적적함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이제 감사할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다가가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 군밤은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날 가오잡는다고 나무라지 않으며, 주고받는 문자에 맞춤법이 틀려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그의 눈화장이나 립글로즈가 번져있어도 양 볼에 뾰루지가 생겼다 해도 그의 매력이나 가치를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첫만남처럼 잡은 손을 놓게 되리라. 같은 마음 또는 다른 마음이어도.
세월이 흐르거든 가슴 속 깊은 방에서 무엇보다 소중했던 기억을 꺼내, 고마움과 아련함으로 다시 만나지리라.

<유안진-지란지교를 꿈꾸며>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