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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L-NOLLAN?!/#4 바이

[이바닥소식]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안 망하게 해주세요

글. 쥬리 

다중약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소수자성 혹은 약자성을 두 가지 이상 갖고 있다는 뜻인데요, 이럴 경우에 억압은 1+1이 아닌 그 이상으로 훨씬 더 심해집니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한 예입니다. 청소년에게 학교와 가정에서 요구되는 모습은 연애도 하지 않고, 성적이지도 않으며, 성욕도 없는 그런 ‘건전한’ 모습입니다. 이성애자 청소년도 이와 같은 면에서 탄압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청소년이 성소수자인 경우에는 ‘예민한 시기라 그렇다’ ‘청소년기는 원래 성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라는 정체성 부정의 말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 아웃팅을 당하면 부모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갈 수도(나갈 수야 있겠지만 청소년이 탈가정하여 사는 것은 일자리를 얻는 데서 겪는 어려움부터 시작해 청소년기에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미래가 한결 불확실해지는 사회구조까지 탈가정 청소년이 겪는 난관은 끝이 없습니다.) 없고 교사와 학생들의 폭력을 피해 학교를 마음대로 옮길 수도, 친권자 동의 없이 자퇴할 수도 없습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이 나왔을 때 보수 단체와 언론에서는 유독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그리고 임신과 출산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말이 많았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되면 초등학생이 임신하고, 청소년 사이에 동성애가 퍼진다’ 는 구호까지 생겨났지요. ‘어른들’ 이 보기에 청소년은 무성적, 무섹슈얼리티적이여야 인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보수 측의 압박에 더해져 곽노현 교육감과 관련한 여러 정치적 상황이 얽혀서 그랬는지 교육청은 초안을 낼 때 성소수자 인권 관련 조항을 모두 뺀 것은 물론, ‘학칙으로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상한 조항을 넣고 종교와 집회의 자유마저도 ‘교육목적상 제한’ 혹은 기타 애매모호한 말로 후퇴시켰습니다. (이 글이 레인보우링에 실릴 때는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교육청이 최종안을 입법 예고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고,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비롯한 다른 문제적인 조항들을 제대로 고치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면, 청소년 성소수자가 이렇게 가시화되고 의제가 된 적은 성소수자 운동 진영에서도 별로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상하게 청소년만 끼면 조직화가 잘 안 되는 특성도 있지만(청소년 노동자, 청소년 장애인, 청소년 페미니스트 운동이 가시화 된 적이 있었던가요?) 청소년 성소수자의 상황, 학교와 가정의 감시, ‘사춘기’라는 딱지, 아웃팅과 폭력이 더욱 심해지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청소년을 억압하는 학교와 가정이라는 것이, 그리고 ‘어리다’에 농축되어 있는 나이주의에 맞서기에는 너무 뿌리 깊고 강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껏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해 이루어진 것들은 커뮤니티 형성과 그들이 겪는 탄압을 인터뷰로 조사정도에 그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소수자가 소수자인 상황에서 같은 억압을 공감하는 커뮤니티의 형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태 조사의 한정된 자원과 열악한 상황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도록 만들었겠지만 이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의 목소리로, 가정과 학교의 탄압에 대해 부당함을, 그리고 자신의 성적인 면면들과 섹슈얼리티와 성욕은 존재한다는 것을 외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처럼 직접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건드리는 사건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과 더불어 청소년 성소수자의 보다 적극적인 운동 흐름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레즈비언이고 탈가정, 탈학교 청소년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나이주의와 이성애중심주의, 가부장체제 등의 억압이 얽혀 가해지는 존재이고, 그래서 청소년 성소수자 조례대응팀(가칭)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제정된 후에는 학교 안팎과 가족 사이에서 억압받는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으로 뻗어나갈 계획입니다. 함께 하실 분은 http://cafe.naver.com/queerstudentsrights로 오셔서 글을 남겨 주시고, 본인이나 아는 사람이 겪은 차별 사례를 올려주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성소수자 조례대응 공동행동에서 지속적으로 번개를 열고 있으니, 여기 참여해주시는 것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