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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L-NOLLAN?!/#4 바이

[바이] 독자공모글 / 박쥐라도 괜찮아


독자공모글 

박쥐라도 괜찮아

글. freesailor
twitter @lunarhb


 바이섹슈얼은 흔히 박쥐에 비유되곤 한다. 그리고 많은 바이섹슈얼들이 그런 비유를 싫어한다. 아마 이 비유는 이솝 우화의 박쥐가 동물 편에 붙었다 새 편에 붙었다 했다는 이야기 때문일 거다. 한 쪽에 머물지 않고 이쪽저쪽을 오가는 기회주의자, 양성애자에게는 항상 그런 이미지가 씌워져 있다.
 다른 정체성을 가져보지 않아서 비교하기는 곤란하지만, 내가 가진 바이섹슈얼이라는 정체성은 좀 묘하다. “사실 사람들의 70~80%는 양성애자라고 하던데? 본인이 그걸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보다 두 배로 더 더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이건 그냥 생각 없는 호모포비아이니 무시하겠지만), 박쥐, 기회주의자의 이미지 때문에 성소수자로서의 아픔을 공유해야 할 동성애자들에게까지 배척당하기도 한다.
 심지어 “바이섹슈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의 과도기적 고민이거나 착각일 뿐이지, 그게 하나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맙소사,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양성을 다 사랑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내가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는데, 내 주변에 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때로, 양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일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곤 한다. 이성애자 집단과 동성애자 집단, 둘 모두에게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기 때문에. 동성애자 커뮤니티 내에서 바이포비아를 목격할 때가 특히 그렇다. 이성애자들 중에 호모포비아가 많은 건 못들은 체 하기가 그나마 쉽지만, 동성애자 바이포비아에 대해서는 항상 막막함을 느낀다.
 바이섹슈얼인 사람은 애인이 두 명 있는 거 아니냐(남녀 한 명씩), 적당히 동성이랑 연애 좀 해 보다가 어차피 나중에는 이성이랑 결혼할 거 아니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를 내며 반박하고 싶어지면서도, 내가 지금 이성 애인과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모종의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 사람을 제일 좋아하는 게 맞는데도 ‘남자여서 별 망설임 없이 관계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선택한 것 아닐까’ 하며 나부터도 내 감정을 의심한다. 확실한 양극이 아니라 중간쯤에 서 있는 건 원래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그런데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바이섹슈얼을 박쥐에 비유하는 게 꼭 기분 나쁜 일이 되어야 할까? 나는 오히려 박쥐가 바이섹슈얼을 상징하기에 가장 좋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쥐도 아니고 새도 아니지만 사실 쥐나 새일 필요가 없는, 그저 ‘박쥐’인 존재. 이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니지만 사실 양쪽에 속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그저 바이섹슈얼, 양성애자인 존재. 양성애자를 상징하기에 박쥐만큼 적절한 게 딱히 더 있을까? 
 ‘queer’가 더 이상 욕이 아니라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당당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된 것처럼, 바이섹슈얼 또한 당당하게 자신을 ‘박쥐’라고 지칭해도 되지 않을까?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서 이솝이 살던 때로부터 박쥐에게 씌워진 기회주의자의 굴레를 이제는 벗겨 줄 때가 되지 않았는지. 나는 당당하게 나를 박쥐라고,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겠다. 어느 쪽도 되지 못한 게 아니라, 지금 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박쥐.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