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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L-NOLLAN?!/#4 바이

[바이] 독자공모글 / 깃털 같은 바이섹슈얼 고민은 계속 된다


독자공모글

깃털 같은 바이섹슈얼
고민은 계속 된다

글. 연우


 

내가 여자를 좋아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은 열 여덟살 때였다. 첫 사랑은 여자였고,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였다. 같이 놀면서 느꼈던 두근거림, 설렘―이 모든 것이 우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제껏 내가 느꼈던 혼돈과, 레즈비언 친구들의 성적인 장난, 그 모든 것이 단번에 이해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고등학교 때 모든 사랑 고민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나는 레즈비언인가, 단지 사춘기라서 일시적으로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인가. 나는 여고를 다녔고, 여고에서 짧게 머리를 자른 내게 고백하는 여자애들은 많았다. 사춘기의 나는 머리를 싸맨 끝에 내가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쩌면 환경적 요인 때문은 아닐까―라는, ‘남 탓’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 만났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매력적이었다.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로틱’을 부르는 영웅재중의 근육에 환호하다가 김혜수의 명품 가슴에 설레어 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야한 꿈이라도 꿀라치면 어떤 성별할 것 없이 양성이 벗고 나왔다. 정장 바지 속 남자의 엉덩이 근육, 단정한 블라우스 속 여자의 가슴, 모든 것을 관음(觀音)할 수 있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기로에 놓였을 때 차라리 한 쪽으로 쏠리길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성애자, 동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동성애자가 그러하듯, 양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자력으로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여자가 끌릴 때, 남자가 끌릴 때 그것은 예고 없이 부는 바람처럼 찾아왔다.
 ‘소수 속의 소수’, 바이섹슈얼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다.
 ‘결혼할 때가 되면 훌쩍 남자에게 떠나버리는 바이섹슈얼’, ‘박쥐 같은 바이섹슈얼’, ‘문란한 바이섹슈얼’ 별의별 타이틀도 들어봤다. 바이섹슈얼에게 데어본 사람이라도 만나면 나는 당사자가 아닌데도 바이섹슈얼의 대표가 되어 야단을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바이섹슈얼이 곱디 곱냐, 모든 것이 오해냐, 그건 또 아니다. 굳게 사랑해서 자신을 이성애자 혹은 동성애자로 믿으며 살아가는 바이섹슈얼이 있는가 하면,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는 깃털 같은 바이섹슈얼도 있다. 결국 개인차인 걸, 바이섹슈얼을 욕할 것이 아니라 개인을 나무라란 소리다.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그리고 당연히―성별도 없다.
 나는 ‘깃털 같은’ 바이섹슈얼이다.
 이것은 영영 해결 못할 고민거리이자,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사실이다. 규정된 성별이 아닌, 그저 매력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권리가 내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성별만큼은 나를 가로막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만날 수 있다.
 평생 내가 바이섹슈얼일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열여덟 살의 나는 첫 사랑이 여자인 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혹은 그녀를 잊지 못해 여자만 만날 수도 있었다. 동성애자가 될지, 이성애자가 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될지 앞으로의 일이기 때문에 모른다. 어쨌건 지금의 나는 가볍고 자유로운 깃털 같은 바이섹슈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