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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vol. 2

[십대이야기] 불특정 단수에 대한 특정 복수


“그래서 저는 세상이란 것은 불특정 다수인 복수에 대한 단수로 살아 내야 하는 거라고 죽 생각해왔습니다.” 
윤대녕 , 달의 지평선 中


내가 나의 정체성을 깨달은 건 15살때였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사귄지 1년이 다되어가던 때였다. 정확히는, ‘볼 장 다 본 사이인’ 그녀가 굳이,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일은 역시 안되겠어”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 나서부터 -
세상에나, 난 내 사랑에 너무 열정적이었던 나머지 내가 ‘레즈비언인지뭔지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다. 중요한건 나 역시 호모포비아였단 것.
(심지어) 나는 “레즈비언 그거, 친구간의 우정을 착각한거래” 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주위에 커밍아웃한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그게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인터넷을 뒤져 온갖 사이트를 찾아내고 자료들을 우걱우걱 먹어나가는 것 밖에는- 그러다 알게 된 게 ...

#1. “대구경북성소수자인권행동” 이었다.
할렐루야. 사실 내겐 한국에 동성애자가 있다는 것조차 의심스러운 일이었는데 심지어 대구에 ‘동족’ 이 있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그러나 나는 중학생이었고, 오프라인 활동을 하기엔 시간도 맞지 않았을 뿐더러 소통욕구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렇게 사이트만 문턱이 닳도록 돌아다니다가 여친 에게 걸려 뺨따구를 맞고서야 (그때 그녀는 “너도 이런 더러운 레즈비언이 되고 싶어서 그래? 자랑이야?!”라고 했던 것 같다) 그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사실 립스틱 바른 게이 - 빨간 하이힐을 신은 - 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아, 고백한다. 사실은 레즈비언 회원분이 나를 어두운 데로 끌고가 덮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물론, 굳이 립스틱을 바르고 오신 게이분도 없었고 나는 그날 잡혀먹지도 않았다. 대신, 우리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동성로를 함께 걸었다.
기억의 단편1. 게이 한 분이 말한다. “저 남자 내 타입인데?!” “가서 번호 좀 따봐!”
기억의 단편2. “저기봐봐 커플이다” “대구에 게이더 돌아가는 사람들 많다니깐!”
단 한번 도 그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입 밖으로 그런 말을 내뱉어 본적도 없었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도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그건 내게 큰 충격이었다. 속에서 곪아있던 물들이 와르르 손끝으로 쏟아져 버렸다.
“득음” 이었다. 덕분에 그 후로 언제든지 ‘나는 정상이다(?)! 나는 괜찮다!’ 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기분으로 몇 달을 살았다.
그렇지만 활동을 하면서도, 그분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내가 부딪쳤던 문제는

#2. 왜, 내 나이 또래의 성소수자를 만날 수 없나. 대체 그들은 뭘 하고 있나?!
유X카 라는 사이트를 몇 번 듣고 찾아가 보긴 했지만, 내 속에서 끓고 있는 소통욕구, 정보에 대한 갈구,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몸부림. 을 해결할 순 없었다.
분명히 누군가도 나처럼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 왜? 어째서?
생각만이 꼼지락 거리다 결국 ‘차여버린김에’ 사고도 치기로 했다. 그래서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Rateen”이 탄생한다. (세상에, 난 그 여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딱히 아는 청소년 성소수자도 없었고, 부끄러워서 진기가 만들었다는 말조차 못한 채 뉴스와 자료들을 퍼다 날랐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인 것이 3년이 지난 지금 2500여명이 되었다.
처음 Rateen을 만들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때는 그것이 ‘할 수 없는것’ 이었는데 커뮤니티란게 마치 potluck파티 같아서, 생각 위에 생각이 덧입혀지고 아이디어가 ‘사고’ 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모이면 항상, 생각했던 것 이상을 만들어 냈다. 지금의 모든 Rateen활동들은 그렇게 생각과 사람들이 모여 무지개색 조각보를 이룬것이다.
내가 그전의 활동에서 ‘해방감’ 과 ‘자신감’을 얻었다면 Rateen에서는 사람들을 얻었고 - 각각의 다양성들이 모여 어떤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그게 어떤 일 을 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그건. 정말. 굉장한 거였다.

#3. 커밍아웃을 ‘해놓은’ 친구가 언젠가 한번 그러더라.
“난 연애란게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가. 가족도 친구도 있을테고 직장도 있고 취미도 있을 텐데 동성애인 때문에 고민한다는게... 그러니까 소수자들 끼리 모여서 활동하고 그런 건 동호회 같은 거랑은 다르잖아. 연애가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이라면 그 사람들한테도 분명...”
무슨 뜻일까. 알고 있지만 이해하지 못한 척 하고 싶었던 질문.
글쎄 분명히 성소수자들이 모이고 레즈비언들이 모이는 일은,
무엇이 되었든 간에 “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거랑은 다를 거다.
연애는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상과의 연애는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소득이 적을 수도 있고 가족을 구성하거나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는 일에서도 배제되는 사람들이다. 연애나 아우팅의 고민들과 일상의 두려움에서 부터 어디에서든 쉽게 해방 될 수 없고, 심지어 많은 청소년 레즈비언들은 ‘여자 끼리 섹스를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대게 세상과 호흡을 맞추기 힘든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과 - 내 존재가 증명되고 함께 녹아 들 수 있는 소통, 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은 거다. 그리고 - 확실히 모이면 우리는 할 일들이 많다.
(중요한건, 퀴어 만큼 재미있는 족속도 없다는 거다. )
‘내가 누구이든 누굴 사랑하든 괜찮아. 나는 나를 사랑해’ 라는 나의 깨달음은 어쩌면 내 자신으로 부터가 아니라 그런 공간과 그런 사람들 속에서야 비로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커뮤니티를 경험한 이후’ 난 전 보다 더 깊고 크게 숨을 쉬며 살고 있다.
‘세상이란 것은 불특정 다수인 복수에 대한 단수로 살아 내야 하는 거라고’ 하더라.
하지만 우리. 여기에. 함께. ‘특정 복수’ 로써 살아내는 것도 꽤 재밌지 않을까?

글.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