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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vol. 3

[십대이야기] 암.쏘.핫

십대이야기 암.쏘.핫

이반놀이터

일차, 신공, 게이빈도 좋지만, 뭔가 좀 ‘다르게 놀 순 없을까?’
난 내가 여자인지도 잘 모르겠어 근데 꼭 레즈끼리만 놀아야해?
나를 좀 더 잘 알고 싶어, 다른 성소수자 청소년도 만나보고 싶어..

청소년 성소수자 우리들을 위한, 우리들에 의한, 우리들의 이반놀이터, 이반놀이터는 매년 8월 15일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Rateen에서 청소년 이반들의 게이프라이드 고취와 소통, 정보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청소년 이반인 우리들이 직접 준비하는 행사입니다.

이반놀이터가 끝나고, 대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노곤함에 푹 젖었어도 눈을 붙이지는 못했다. 늘 이반놀이터가 끝나면-그러나 매년 다른- 묘한 기분들에 속이 울렁거린다.

이반놀이터는 항상 부족한 행사였다. 대부분이 학생이었던 우리는 돈도 시간도 경험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반놀이터가 끝나면 항상 ‘무언가가 넘쳐흘러’ 주체할 수 없다.

작년 프로그램 중에 공동작품, 전지에 약간의 밑그림을 그려놓고, 사람들이 꾸미는 활동이있었다. 깜빡하고 준비물을 챙기지 않아 급히 펜과 색연필 몇 개만을 내놓았는데 처음엔 쭈뼛쭈뼛 하던 사람들이 하나씩 펜을 들고, 색을 칠하고, 무늬를 그려 넣기 시작했고 - 그건 정말. 너무. 이뻤다.
그때 나는 ‘다양성’ 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각각 세상의 한 부분을 자신의 존재, ‘나다움’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 그렇지만 그 존재들이 어울리면 한 가지 색으로 가득 찬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다는 것.

첫 회 이반놀이터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강의나 공연이 아니라 마지막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자신의 얘기를 했던 30여분이었다.
“엄마에게 커밍아웃 하려고 해요, 다른 사람이 나를 쳐다볼 때의 눈빛으로 - 엄마가 나를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화장실에 가면 수십 명이 밖에 있었어요. 레즈비언인 나를 구경하려구요”
“정말 친하던 친구한테 커밍아웃을 했죠, 근데 결국 싸우고.. 이젠 연락도 안돼요”
누군가는 글썽거렸고, 그런 누군가를 다른 누군가가 토닥거렸다.
거기엔 항상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비로소 자신을 처음 말할 수 있었던, 일종의 옹알이 같은 소통이 있었다. “이런 얘기하는 것, 여기가 처음이에요”

그리고 2년이 지났고 많은 것이 변했다.
20명에 지나지 않던 참가자는 100여명이 되었고, 멋진 강사 분들을 초대할 수도 있었다.
나도 변했다. 스무살은 나이랄 것도 없지만, 적어도 열여덟은 아니고, 비록 엄마가 나를 -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듯이 -보기는 했지만 어쨌든 커밍아웃도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너무 즐거워졌다’ 는 것이다.
첫 회 때의 참가자들은 ‘나는 변태 레즈비언이야’ 라는 그늘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쉽게 어깨를 펼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올해의 참가자들은, 음악도 없이 서로 어울려 춤을 추고, 누가 봐도 ‘너 게이지’ 할 것 같은 옷차림을 하고, 그야말로 ‘I’m so HOT’ 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글쎄, 누가 이렇게 잘 노는 사람들을 두고 청소년 성소수자라서 불쌍타고 하겠나.
이번 퀴어퍼레이드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십대가 무대에 올랐다고 하지만, 이미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보이지 않는 무대들에 올라 있었던 걸까.
Rateen의 카페에서도, 이제 “레즈비언인데 어떻게 하면 정상적으로 살게 될까요” 라는 고민은 잘 올라오지 않는다. 오히려, 레즈비언이나 트렌스젠더 같은 단어들이 나를 설명하기에는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라는 불평들이 있을 뿐이다.
물론, 이 공간 밖을 지나면 여전히 우리는 많은 위험과 답답함 속에 눌려 지내야 한다. 아직까지 가정이나 학교가 결코 만만하게 우리들을 ‘허용’ 해주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반놀이터를 찾았던 몇몇 지역 분들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압박도 걱정도 없는 공간 안에서 만큼은, 이제 우리는 ‘나’ 를 너무나도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난 정말 멋져”. 이반놀이터가 끝난 후 여기저기 커밍아웃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다고도 했다.

나도 정말 기대가 된다. 청소년 성소수자인 우리가 누군가의 동정이나 도움이 필요한 ‘대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우리를 사랑하고 소통하고 만들어가는 걸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콤깜찍발랄한 우리들이 계속해서 더 많이 ‘무대’ 위에 오를 걸 알기에 ‘성소수자 해방’은 생각보다 빨리 올 것 같다. 퀴어풀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지금부터 맘의 준비를해야지. (그리고 이 엄청난 ‘십대 퀴어’의 수요를 노려서 떼돈을 벌어야지 큭큭)

이반놀이터는 처음, 다른 성인 성소수자 단체의 제안에서 시작되었지만
정말로 이반놀이터를 시작하고, 만들고 끌어온 건,
“과연 우리, 아니 나를 위해서 , 도대체 나는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또 뭘 해 줄 수 있을까?

글.진기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Rateen (cafe.daum.net/Rateen)
청소년성소수자를 위해, 정체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을 함께하기 위한 커뮤니티, 카페를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이지만, 매월 스터디 모임, 정모 등의 오프라인 활동과 말칙게이 댄스팀, 네이버팀 등의 소모임 활동도 하고있다.
후원 계좌 : 국민은행 (김다예 804202-01-284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