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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vol. 3

[세대탐방] 기억의 집을 찾아서 : 50대 규, 현 선배님 인터뷰

기억의 집을 찾아서   [ 50대 규, 현 선배님 인터뷰 ]

이번에는 어떤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등장할까?
50대 레즈비언 규 선배님과 현 선배님을 만나기 전 품었던 기대였다. 사실 70년대 명동 레즈비언 이야기를 들은 이후, 명동이 당시 레즈비언들의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버렸다고 고백해야겠다. 그래서 규 선배님과 현 선배님의 70년대도 여성 전용 카페들이 중심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선배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로 규 선배님이 ‘해태의 집’과 ‘퍼머스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치 국보급 유물을 발굴해낸 기분이었다. 그 ‘집’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말해달라고 하자, 선배님은 그 가게들이 분식과 빵을 파는 집들이었다고 했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나는 선배님들과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50여 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누구나 삶에 굴곡이 있겠지만, 규 선배님과 현 선배님은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들을 겪어야 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결혼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70년대와 80년대, 여성이 누구의 부인이나 누구의 엄마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결혼을 떠난 ‘독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이 곧 독립을 의미했다.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규 선배님은, 다른 형제들은 모두 결혼을 하고 ‘독립’했지만 자신은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어머님의 “딸이자 친구이자 애인”이라고 말했다. 그런 딸이며 친구이며 애인인 규 선배님이 애인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을 떠났을 때, 어머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결혼을 통한 독립이 아니라 동성 애인과 함께 살기 위한 독립은,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 딸의 어머님에 대한 “배신”에 가까웠던 것이다.

결혼 없는 삶이 힘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연애관계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질 수도 없고, 시댁이나 처갓집 식구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동성 연인 관계는 십 년 동안 살다가도 한 번 크게 엇나가면 “바로 전 날 한 이불 덮고 잤더라도” 쉽게 끝나버릴 수 있었다.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지만, 관습과 제도에 의해 사랑의 유령으로라도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이성애 부부의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 아니라 차라리 ‘덤’에 가깝다. 그 ‘덤’을 얻기 위해 자신들을 떠났던 옛 애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에서 씁쓸함이 배어 나왔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사이, 나는 선배님들과의 인터뷰에서 기대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은연중에 원하고 있었던 것은 어느 특정한 장소와 사건들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어느 시대의 ‘레즈비언 문화’였다. ‘퍼머스트 집’과 ‘해태의 집’에 엉뚱한 기대를 한 건 그 때문.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해태의 집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선배님들의 ‘기억의 집’에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기억의 집은 70년대나 80년대 한때 존재했다가 사라진 것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었다. 예컨대 가부장적인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레즈비언으로 살기 위해서는 남성 못지않은 남성성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선배님들에게 남아있는 듯했다. 20대부터 바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가슴에 압박 붕대를 대었던 현 선배님에게 지금도 “아줌마”라는 호칭은 “기분이 좋을 때에만” 넘어가줄 수 있는 말이다. 그런 선배님에게 나는 남성적이어야 하는 레즈비언으로 보이지 않은 듯했다. 나는 그날 헤테로들에게도 많이 하지 않은 커밍아웃을 선배님들에게 해야 했다. 선배님들의 레즈비언 정체성, 관계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이것이 다음 세대들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선배님들이 살아온 ‘기억의 집’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과거 레즈비언의 경험과 현재 레즈비언의 경험이 만나는 ‘레인보우 링’이 시작된다. 과거의 일이 과거에서 끝나지 않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다음 세대의 생각과 경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때 레즈비언 역사발굴의 의미가 생긴다.

글. 복어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