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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vol. 3

[레인보우링 존재의 이유] 레인보우링 존재의 이유 1

우리는 흔해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이 떠도는 섬이라면...
이성애는 흔하다. 거리에는 항상 이성애자들이 넘쳐난다. 텔레비전에서도, 잡지에서도 이성간의 사랑만이 물결친다. 우리는 그 바다에 떠있는 하나의 섬...섬...섬들이다.
바다를 중심으로 보면 섬은 외롭다. 옆을 보나 뒤를 보나 앞을 보나 똑같은 푸른 바닷물뿐. 섬은 덩그러니 혼자다.
섬은 무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까. 아니 보낼 날들이 어디 하루뿐이랴. 어제를 말할 곳도... 내일을 물어볼 곳도... 없이 세월은 흘러간다.
네가 섬이라면, 망망대해에 머리만 겨우 삐죽이 내밀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작은 섬같다면, 한없이 밀려들기만 하는 파도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 지쳐가는 섬같다면.

바다 속 너의 뿌리를 봐...
하지만, 너 알고 있니? 섬의 뿌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단다. 바다는 섬들과 섬 사이에 고여있는 물일 뿐. 아무리 바다가 넓어보여도 더 넓은 것은 그 바다를 담고 있는 섬과 섬들의 끝없이 얽힌 뿌리란 걸.
이제 화산을 닮은 너의 그 몸을 흔들어, 물 아래로 축 늘어져 굳은 너의 그 손을 꼼지락거려 봐. 걸음을 잊어버려 무릎 꿇은 그 다리를 뻗어 봐.
사람들이 우릴 흔히 볼 수 없다 하는 건 없어서가 아니라 가리어진 탓이지. 우리가 외로운 건 혼자여서가 아니라 침묵당한 탓이지.
지금은 너 알고 있지? 모든 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내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너의 어제가 나의 내일에 닿아 있어 오늘을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사랑한다는 걸.

글. 한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