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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vol. 4

[특집: SEX] 건강

성 건강을 통해 생각해보는 레즈비언

예전에 피부에 반점 등이 생기거나 얘기치 않은 몸의 이상만 생기면 에이즈나 성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레즈비언 커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통은 이 커플과 반대로 화려한 성생활을 즐기면서도 성병 등의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던 레즈비언 얘기를 자주 접하는지라, 그 커플의 두려움이 당시에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성병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나 성병의 위험을 지나치게 낮추어 보는 것 둘 다 레즈비언 성 건강에 대한 양극적인 태도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레즈비언 성관계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접근하기 쉽지 않고 의사에게 이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와 같은 상반된 태도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커뮤니티 내에서 일종의 ‘~카더라’ 의학 통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실정이라 하겠다.

그러나 레즈비언 성 건강에 관해서 무기력한 것은 단지 레즈비언 성생활에 관하여 무지한 의사들이나 좀더 체계적인 의학 정보망의 부재 탓만이 아니다. 사실 현대 의학 자체적으로도 레즈비언 성 건강에 관해 구체적인 연구를 수행한 바 없고, 관련 지식 자체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넘쳐나는 레즈비언 성생활에 관한 정보에 비해 성 건강 관련 지식은 턱없이 모자란 현실은 어쩐지 성에 관한 우리의 분열적 상황을 보여주는 듯 하다. 우리가 건강한 성에 재차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단지 건강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추종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분열적 상황을 치유하자는 자세가 건강한 성을 다루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우선 레즈비언 사이에서 성병이 전염되지 않는다는 통설이 그릇된 통념이란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레즈비언 여성이 다른 여성보다 C형 간염, 세균성 질염, HIV 위험 행동 등의 빈도는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그리고 한번도 남성과의 성 관계를 한 적 없는 여성이 트리코모나스, 헤르페스, 성기 사마귀 등을 보고한 예도 있다. 그러나 레즈비언 여성이 여성 간 성관계를 함으로써 다른 여성보다 특정 성병의 전염 비율이 높아지는지 여부를 밝혀내는 연구가 수행된 바 없다. 80% 이상의 레즈비언 여성이 남성 간 성관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여성 간 성관계의 위험도를 정확히 측정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여성 간 성관계라고 해서 완전히 안전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여성 간 성관계의 위험도를 특별히 이성 간 성관계에 비교할 수 있는 근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관해 우리가 곱씹어볼 수 있는 부분은 레즈비언의 건강에 대하여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레즈비언들이 남성과의 성 관계를 경험한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 만으로 이성애자 여성과 건강에서 다른 지점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또 한편으로 여성 간 성관계라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건강과 불건강이 나뉘어진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대다수의 레즈비언들은 이성애자 여성과 달리 주기적으로 산부인과 서비스를 찾지 않으며, 성에 관한 의료 서비스를 접근하기 쉽지 않다. 이는 성병에 걸리더라도 레즈비언들이 이성애자 여성보다 쉽게 치료받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게 된다. 오히려 보다 중요한 것은 레즈비언이냐, 여성과 성관계를 했느냐 보다는 지속적인 건강에 대한 관심과 관리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글. 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