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놀이터를 준비하면서
설마 했지만, 눈이 너무나 많이 왔습니다. 때문에 준비도 늦어지고 길을 안내하기 위해 붙여뒀던 발자국도 사라져서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찾아오는 사람들도 애를 먹었습니다.
인원에 맞춰 사정사정해서 대학 강의실을 5개나 빌려 두었는데, 막상 행사를 시작하니 아래층의 고시원 분들이 시끄럽다는 통에 거듭거듭 사죄하기도 했구요. (우리가 맘껏 발을 구르게 될 날은 언제 올까요?) 하기사, 어려운 일이야 그것 뿐 이었겠습니까. 학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엄마 눈치도 봐야 하는 우리들은 회의시간을 잡기도 어려웠지만 언 발을 동동 굴러가며, 고픈 배를 잡아가며 판넬을 만들고 머리를 맞대서 ‘우리가 정말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뜨겁게 얘기했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고, 우여곡절 끝에 행사도 잘 마치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우리가 그날 한양대에서 이반놀이터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청소년을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성애자 남성이 ‘정상적’ 이라는 멘트를 내보냈습니다. 여전히 청소년 성소수자는 ‘정상적’ 일 수 없다고 말하는 곳에서 동시에 우리가 ‘우리는 괜찮다’ 라고 얘기하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참 새삼스럽게 내가 대견하고 우리가 대견하고 이런 속에서도 부대끼며 사는 것이 신기하고 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이반놀이터를 했을 때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얼렁뚱땅 지나가고 실수나 잘못이라면 지금에는 눈뜨고 못 볼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래도 비 오던 그날에 그 작은 공간에 내가 아닌 다른 성소수자 친구들과 둘러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동적이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시는 인터뷰를 하러왔던 기자분께 회원이 300여명이라고 자랑했었는데 지금 이렇게도 이행사가 커지고 회원수도 4800명이 되고 그동안 우리가 많은 것을 겪어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그래도 청소년인 우리가, 청소년 성소수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정도 규모의 행사를 , 우리 손으로 , 우리의 고민을 담아서, 우리가 직접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 가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행사를 기획하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행사를 준비하고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고 이 행사를 통해 답도 얻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인 것 같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 분들도 자신을 위해 힘을 낼 수 있는 질문을 가져가셨길 바랍니다.
더불어 이 자리를 빌어 후원과 지지 보내주신 QIS 차세기연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 감사드립니다.
*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Rateen은 인터넷 카페 (cafe.daum.net/Rateen)을 기반으로
정보공유, 고민 상담 등의 목적으로 함께하며 더 나아가 청소년 성소수자의 권리 향상과 더욱 다양한 문화 형성에 기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2007년 8월 15일 제 1회 異반놀이터를 시작으로 하여 이번으로 4회째를 맞는 이반놀이터는 Rateen에서 주최하며 청소년 성소수자인 우리가 우리의, 우리에 의한 , 우리를 위한 행사를 직접 만들어 나간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정체성이나 인종 국적 나이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으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고민에 맞춘 강의나 상담, 각종 레크리에이션 등이 진행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공간에 모여서 우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욱 잘 알아가고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 ‘다.다.다(모두 다 다르다)’ 라는 주제 아래 진행된 이반놀이터는 총 150여명이 참여하였으며 종교/인권/커밍아웃/연애와섹스/퀴어로 살아가기 의 5개 섹션으로 나누어 진행하였습니다.